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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 _ 영조/사도세자/혜경궁 홍씨의 진짜 이야기

by 제너러스라이프(경제) 2021. 7. 11.

1. 실록으로는 다룰 수 없는 진짜 이야기

 한중록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사도세자의 아내 혜경궁 홍 씨의 글이다. 사도세자는 영조 왕의 아들로서 세자의 위치에서 결국은 비참한 죽음으로 끝난 비운의 왕세자이다. 우리에게 너무 유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혜경궁 홍 씨는 그 과정에서 보고 들은 바를 한중록이라는 기록으로 본인은 영화 사도세자를 보고 다시 한번 이끌리게 되었다. 그리고 영조 조선 21대 왕은 제위기간이 상당히 긴 왕이고 권력에 대해 끊임없는 집착이 있었다. 어찌 보면 대단한 왕권을 가진 왕의 아들 세자라는 입장에서 사도세자가 그렇게 아버지에게 죽을 수밖에 없던 이유가 무엇일까 너무 궁금했다.

 그리고 우리가 사도세자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아버지 영조를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실록에 영조는 탕평책을 근거로 한 너무나도 위대한 왕으로만 기록되어 있을 뿐 자세하고 인간으로서 영조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결말인 점을 알고 보았고 또, 가장 옆에서 지켜본 혜경궁 홍 씨의 눈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 기록되었을까? 라는 호기심에 책을 펼친다.

 

2. 작은 불신이 쌓여 결국 큰 화를 만들어 냄

 사도세자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똑똑하고 총명한 남다른 엘리트였다. 영조는 그런 사도세자에 너무나도 큰 기대를 하게 된다. 하지만 영조가 지정해놓은 나인들은 영조의 형 / 죽은 경조의 나인들로 배치하였는데 그것이 나중에 큰 화를 낳게 된다. 영조는 형의 살해 의심을 죽을 때까지 받고 사는데 그런 의심을 해소하고자 자신의 가장 이쁜 세자 (아들)을 죽은 경조의 나인들로 배치한 것이다. 그 나인들은 글공부를 추천하지 않고 검술을 가르치는 듯의 보이지 않는 해를 가하였다. 그 당시 조선은 검술이나 무술보단 글공부를 더욱 높은 가치를 둔 국가로써 무술을 매일 연마하는 사도세자를 영조는 좋게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어긋난 둘의 사이에선 작은 불신이 끊임없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 여러 가지 시험을 들게 했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대리청정이다. 대리청정을 맡은 사도세자는 왕의 눈치를 보고 제대로 결정을 내지 못하면 왕은 꾸짖었다. 반대로 사도세자가 뜻을 가지고 정정당당히 결정을 하면 왕은 그것 또한 꾸짖었다. 비가 와도 영조는 사도세자의 탓으로 하였고 사도세자와 대화를 나누면 귀를 씻고 입을 헹구었다. 이때부터 사도세자는 정신착란과 더불어 자기 정체성을 읽고 날뛰기 시작하였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지속적인 의심과 질책으로 인해 어느 누가 제정신으로 살 수 있었을까 싶다. 사도세자는 옷을 입을 때도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곤 했다. 하루에 최대 6명을 살해하였으며 최대 100명 정도를 옷을 입는 일로 살해한 것으로 기록하였다.

 결국 사도세자는 그 칼춤이 영조에게 향하면서 인생의 끝을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 한중록의 저자 혜경궁 홍 씨는 한 가지 선택을 해야만 했다. 남편을 살려야 하는가 혹은 아들을 살려야 하는가..

 그녀의 선택은 결국 아들 이산을 살리기 위하여 영조에게 이렇게 간청한다. “ 처분하소서..” 이때 혜경궁 홍 씨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었을까 생각이 든다. 또 훗날 정조대왕이 되는 아들 이산은 너무 가슴 아프게 아버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뒤주에 갇힌 아버지를 보며 할아버지 영조의 광기 안에서 무서웠을 텐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살려달라 울고 빌었다. 그런 와중에도 혜경궁 홍 씨는 남편이 죽는 상황에서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아들을 떼어내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아픔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영조와 사도세자는 아주 작은 불신이 해소 없이 쌓여감에 따라 결국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큰 화를 만들어 내면서 끝을 맺는다.

 

3. 사도세자 행동의 이유

 앞서 사도세자는 의대증의 이유로 많은 사람을 죽였다. 여기서 영조와 사도세자의 일화가 전해진다. 영조는 왜 사람을 죽였는가 라고 물어보았다.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사랑도 없고 꾸중이 무서워 화가 나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사람 혹은 짐승을 죽였다고 말했다. 영조는 더 이상 대화를 잊지 못했다. 여기서 본인은 영조가 사도세자의 포기를 확정 지은 대화인 것으로 생각한다.

 이 대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사도세자는 끊임없이 아버지 영조의 사랑을 갈구했다. 영조는 조선의 역대 왕 중에 세종대왕과 더불어 훌륭한 정치를 펼친 왕이다. 실록에 적힌 기록에 의하여 역사가 판단한 결과이다. 하지만 영조는 너무나도 예민한 왕이자 사람이었다. 형을 죽였다는 끊임없는 의심을 받고 어머니가 물을 나르는 나인 출신인 큰 아킬레스건을 안고 살았기 때문이다. 의심이 많은 영조에게 사도세자의 아주 작은 어긋난 행동은 자신에게 반역과도 같은 의미였을 것이다. 그로 인해 사도세자는 미움을 받게 되고 정상적이지 못한 성장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지금도 육아 전문가들은 부모들에게 일관적인 행동과 규제를 강조한다. 그만큼 아직 인격이 발달되지 않아 옳고 틀린 것을 판단하지 못하는 나이에 일관되지 않은 사랑이나 처벌은 혼란을 주고 인격이 잘못 형성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사도세자는 일관적이지도 못했지만 아주 작은 사랑은 커녕 무슨 짓을 하든 질책과 꾸중을 받으며 자랐는데 어찌 보면 이런 결말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도세자의 삐뚤어진 대인관계 형성은 그가 무엇이든 해도 되는 금수저 세자로 태어난 것과 완벽주의에 의심이 많은 아버지의 비난이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참 여러 불쌍한 사람들이 생각났지만 그 중에서 혜경궁 홍 씨 또한 사도세자만큼이나 안쓰러운 사람이었다.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무도 모르는 궁에 들어와 남편의 광기를 보고 언제나 불안했어야 했고 또 남편의 죽음을 보면서 견뎌야 했고,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아등바등 살면서 결국엔 이런 한중록이란 기록을 남기는 삶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또한 감사하기도 하다 실록이란 사실에 근거하여 작성되는 기록에는 포함될 수 없었던 300여 년 전의 일을 이렇게 바로 옆에서 본 것과 같은 현실감을 남겨주어 영조 / 사도세자에 대한 본인의 나름 역사적 판단을 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너무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교육의 일관성이 이렇게 중요한 것임을 깨우치게 해 주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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